장은진 작가 - 날짜 없음
- 장은진 작가의 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번째 이야기)
1
직전에 읽었던 최진영 작가의 '해가 지는 곳으로'와 비교가 되었다. 국가 혹은 세계가 무너져가는 재앙이 눈 앞에 닥친 이후, 평범한 사람들이 겪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두 책을 비교하자면 최진영 작가의 '해가 지는 곳으로'는 영화에 어울릴법한 재난 이야기라면 장은진 작가의 '날짜 없음'은 철저히 소설 속에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 두 책을 영화에 놓고 보자면 영화 나는 전설이다 혹은 월드워Z와 투모로우 혹은 설국열차 느낌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이 책에서는 등장인물이 극히 적다. 잠깐 나타나는 인물을 제외하고 중심적 인물은 주인공 '해인'과 '그'라고 불리는 주인공의 연인 그리고 반려견 '반이'. 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극히 적다. 어떠한 도시인지 나타나지 않았고, 단순히 회색의 잿빛의 눈이 끊임 없이 내려 그 잿빛으로 색이 바랜 회색시라고 표현한다. 그렇지만, 회색빛에 가려져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소설 속 불안과 공포를 더욱 강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공감이 된다고는 하지 않겠다.
p20
진짜 두려운 건 사람을 죽음으로 떠미는 불안이라는 투명한 손이었다. 무형의 그것은 사람들을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
2
'그게 온다고 한다.' 이 책의 상징적인 문장이 반복된다. 회색 눈에 감춰져 언론도 공공기관도 그 아무것도 제 기능을 못할 때, 소문만이 언론이 되어버린 그 시간속에 모든 사람이 시한부 인생이 되어버렸다.
회색시에 세 부류의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희망을 찾아 정처없이 떠나는 사람, 평소와 같은 장소에 남아 평소의 생활을 지키려는 사람, 그리고 땅을 파고 지하 깊숙한 곳으로 숨어든 사람들.
새로운 희망을 찾아 정처없이 떠나는 사람들은 긴 행렬을 이루고 처음과 끝이 서로 보이지 않는 사람의 수가 되어 정처없이 걷는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추위에 정신을 놓아버려 '회색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된다. 너무 당연하게도 그 행렬은 끊이지 않고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으며 되돌아 오는 사람 역시 없다. 집단 의식은 이러한 행동에 동조하게 되어 더 많은 사람이 따라 가고 결국 남는 사람이 소수자가 되었다.
회색시에 남아 평소와 같은 생활을 지키려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지내는 사람, 현실을 받아 들이지 않기 위해 의미 없지만 평소의 일을 반복하는 사람.
p56
저것은 삶의 행렬일까, 죽음의 행렬일까. 아무도 그들의 목적지가 어딘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되돌아온 회색인이 아직 없기 때문이었다.
주인공 '해인'씨와 '그'와 반려견 '반이'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지낸다. 컨테이너를 개조한 공간 속에 난로를 가지고, 전등을 통해 서로의 그림자를 확인하며. '내일은 반드시 찾아와!'와 같은 희망은 없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하며.
p84
회색 눈은 쌓일 뿐 결코 녹지 않았다.
3
주인공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 보는 문장이 많다. 아마도 아무것도 없는 회색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서로를 바라보고 그 마음을 확인하고 표현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모든 이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시간 속에서 그러한 감정이 진실된 것인지 확실한 것인지 확신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흔들다리 효과인지 서로가 서로의 도망 장소로서인지 모르니까.
회색 눈은 처음부터 회색 눈이 아니었다고 한다. 처음 한동안은 빨간 비가 하늘이 흘리는 피가 내리는 듯 쉴 틈 없이 내렸고, 그 이후 검은 눈이 내렸다. 검은 눈이 회색으로 변했을 때, 사람들은 색이 연해졌다고 곧 이어 하얀색으로 흔히 아는 그 눈으로 바뀔 것이라고 좋아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 이후 변화는 없이 1년의 시간을 결코 녹지 않으며 쌓여만 갔다.
p128
빛을 상실한 시대. 세계는, 시계를 보지 않으면 밤인지 낮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세계는 시계로 존재했고, 시계는 그 자체가 우리에게 세계였다.
주인공은 무수히 많은 회색 구름, 쌓여있는 회색 눈을 한껏 더럽혀진 양떼 혹은 양말로 표현했다. 그리고, 눈과 함께 떨어지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구름을 유령의 형상이라 칭했다. 어둠밖에 없는 세계에서 그림자를 잃었고, 주인공 '해인'씨와 '그'의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인공적인 그림자만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존재였다.
p129
지금까지 눈이 쏟아졌던 게 아니라 한이 내리고 있었던 것인가. 그래서 이토록 공기가 서늘하고 추운 것일까.
책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 책이었다. 시종일관 불안함과 우울함을 베이스로 제시하고 있는 책이었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우울함과 불안함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 읽는 내내 의문을 지울 수 없었고, 다른 책에 비해서 오랜 시간 고통받으며 읽어야만 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모르겠다. 이러한 끝을 모르는 재난, 시한부 삶 속에서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로맨스를 말하고 싶은 것일까 궁금하다. 나는 책의 내용을 말하며 적었듯 이 둘이 갖는 감정이 실제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회색시에 남았기 때문일까. 서로에 대해 과거를 궁금해 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확신도 할 수 없으며 하루하루 견뎌냈다에 가까운 시간 속에 존재하는 사랑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다.
책 내용에는 '회색 눈은 쌓일 뿐 결코 녹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빨간 비와 검은 눈에서 이어져 온 얼음층의 두께와 무게는 1년의 시간 속에 컨테이너를 찌그러 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 컨테이너가 찌그러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컨테이너 밖으로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다는 내용이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있을 수 없는 재난이기 때문에 이 소설을 판타지 소설이라 칭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인 요소들을 넣었기 때문에 정체성을 알기 어려웠다.
이 소설 속에서 표현되는 회색시, 회색인 그리고 하늘을 뒤덮은 검은색에 가까운 구름과 회색인의 행렬은 현실이 아닌 지옥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림자를 잃은 사람을 설명할 수 있었고, 마지막에 '그'를 찾아온 전 여자친구의 고백, 전등 아래서도 없는 그림자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지옥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에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유일하게 회색인의 행렬에서 돌아온 사람이 있었다. 기타를 좋아하는 '진수'라는 인물의 등장은 이해가 어려웠다. 다가오는 종말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일까? 아니면, 회색인의 행렬 역시 죽음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려웠다. 게다가 '진수'의 등장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극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이러한 의문을 작가의 말에서 조금이라도 풀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평소에 읽지 않았던 작가의 말을 본 순간 나는 경악했다. 이렇게 쓰려거든 소설이 아니라 시를 써야하는 것이 아닐까 기분이 나빴다. 보통 소설에 내 생각을 덧붙여 완성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작가의 말은 코멘터리잖아? 영화 코멘터리에서 감독도 이러한 궁금증이 있는 부분을 설명해 주는 시기인데 너무 불친절 한 것은 아닌지 기분이 나빴다.
시간이 지나서 내가 아는 것이 많아지고, 경험한 것이 더 많아졌을 때 읽으면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의 불친절함과 수 많은 의문 때문에 다시 읽을 일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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